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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지 선생

건물 아래로 흐르는 수맥 위에 , 갤러리 형태로 만들어진 아아치 위에 자리잡고 있는 진지 한 , 진지하맘과 진지한 사이에 있는 50 개의 상점들은 17C 아나돌루 오스만제국 최고 관리자에 오른 진지 호자 ( 선생 ) 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 졌다 . 진지 호자 ( 선생 ) 는 “ 진지 휴세인 에펜디 ”, “ 카라바스자데 휴세인 에펜디 ”, 혹은 “ 카자스케르 휴세인 에펜디 ” 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다 . “ 술탄 델리 이브라힘 ” 이란 이름으로 도 전해지는 이브라힘 1 세 황제시절 명성과 부를 쌓게된 진지 호자 ( 선생 ) 는 이 두 개의 건물 건축지시를 1645 년도에 했음을 그의 어머니인 하미데 하툰 이름으로 설립된 자선재단 설립 서류에서 확인된다 . 이브라힘 황제시절 ( 1640-1648) 왕궁 치료사 ( 종교적 기도를 하고 입김으로 치료하는 치료사 ) 를 역임하며 짧은 시간에 이스탄불에 까지 영향력을 끼친 호자 ( 선생 ) 이었다 . 사프란볼루 출신의 카라바스 이브라힘 에펜디자데 세이히 메흐멛 에펜디의 아들인 진지 호자 ( 선생 ) 는 젊어서부터 이스탄불의 휴세인 펜디자데 세이히 메흐멛 에펜디의 “ 다률 위프타데시 - 종교 치료사를 양성하는 학교 -” 에 들어가게 되며 많은 시간 동안 신학교 수업도 받게 된다 . 오스만제국 왕궁의 “ 키라아티 아지메 ” 에서 이브라힘 황제와 만나게 된다 . 황제의 칙령으로 황제를 돕는 자로 임명되고 종교 교육까지 할 수 있는 직위가 부여된다 . 1641-1643 사이 빠른 승진으로 슐레이마니예 종교 교육처에서 갈라타 법관직에 이른 후 1644 년 무알림미 술탄니 ( 황제의 선생 ) 에 오른 후 군주인 카라 첼레비자데 마흐묻 에펜디의 딸과 결혼한다 . 1644 년 갈라타 군주에 의해 녹봉으로 얻게 된 이 곳에서 짧은 간격으로 4 차례에 걸쳐 아나돌루 군주직을 역임하며 갈수록 힘을 얻게 된다 . 이브라힘 1 세 황제시절 궁중음모에 등장하는 , 오스만제국 대내 . 외 정치사에 거론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인 진지 호자 ( 선생 ) 는 1647 사람들의 눈 밖에 나서 미즈밑에 보내진다 . 사면으로 이스탄불로 귀환 명령이 있었으나 이브라힘 1 세 황제가 1648 년 황제에서 물러나면서 파사카프스에서 체포되어 모든 밭 , 논문서 까지 압수되고 같은 해 사형 선고를 받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 .

오스만 제국사의 가장 심한 격동기에 살았던 사람중의 한 명인 진지 호자 ( 선생 ) 의 삶과 업적은 후세대에 많은 것을 남긴다 . 당 시대에 발발했던 사건들 안에서 , 짧은 시간 안에 오스만 제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오른 사람으로서 , 자신만의 특별한 인성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후대의 역사가 , 정치가 , 문학가 , 영상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는 한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남아 있다 .


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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